개화기 한말의 역사교육

개화기 한말의 역사교육

개화기와 한말 계몽사상가들은 교육운동을 곧 민족운동으로 인식하였다. 이에 따라 민족정신을 함양하기 위한 수단으로 역사교육을 중시하였다.

갑오개혁 이후 근대적인 교육제도가 만들어지고 학교가 설립됨에 따라 역사도 교육과정상의 정규과목이 되었다. 1895년 성균관의 교육기능을 담당하기 위하여 세워진 경화과의 교과목에는 본국사가 필수과목으로, 만국사가 형편에 따라 수시로 가르치는 과목으로 포함되었다. 이후 성균관 경학과의 역사교육은 더욱 강화되어 이듬해 역사라는 이름으로 만국사 역시 정규과목이 되었으며, 매월 치뤄지는 월과에 역사과목이 포함되었다. 1895년 소학교령에 따라 세워진 소학교에서는 3년 또는 2년간의 심상과본국역사가, 3년간의 고등과 본국역사와 외국역사가 교과목으로 포함되어 있었는데, 이 중 고등과의 본국역사는 필수과목이었다. 또한 1895년 세워진 한성사범학교에서는 본과에서 본국사 및 만국역사를, 속성과에서 본국사 및 만국역사의 대요를 가르쳤다. 이들 학교에서 역사교육, 특히 국사교육이 중시된 것은 애국심을 가지고 국가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는 국민을 길러내는 데 적합한 과목으로 여겼기 때문이었다. 한성사범학교 교육의 교수요지 역시 존왕애국의 지기를 넓히고 충효의 대의에 밝은 국민의 기조를 제기하는 것이었는데, 이에 가장 적합한 과목은 역사라고 인식되었던 것이다.

개화기와 한말 역사교과서의 서술은 대체로 실학자들에게 보였던 역사인식을 답습하고 있다. 편년체 서술방식이 대부분이며, 단군조선-기자조선-마한 또는 삼한-신라로 이어지는 삼한정통론을 따르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현채『중등교과 동국사략』에서 보듯이 인과관계에 입각한 근대적 역사서술방식인 신사체가 등장하기도 하였다.

당시 역사교과서 내용의 또 다른 특징으로는 인물에 대한 서술이 특히 많았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이는 국가의 위기를 맞이하여 역사적 위인의 애국심을 본받자는 전통적인 교훈적 역사관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민중은 여전히 계몽의 대상이며, 역사서술에서 민중의 생활보다는 지배층의 시혜적인 정책 운용에 더욱 관심을 보이고 있다. 또한 사회현실에 대한 통찰력이 부족하여 민족적 모순을 일으키는 대내외적 요인을 객관적으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으며, 역사적 개념이나 사실에 대한 과학적 이해가 불분명하거나 정확히 사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이들 역사교과서는 민족의 현실을 깨닫고 민족정신을 일깨움으로써 자주의식을 높이는 데 상당한 기여를 하였다.

한말의 역사교육이 민족의식을 기르는데 이용되는 것을 우려한 일제는 통감정치가 시작되면서 통제를 강화하였다. 우선 학교교육에서 역사를 폐지하거나 축소하였다. 교과서에 대한 통제도 강화되었다. 통감부는 1906년 초 교과서 편찬위원회를 설치하고 직접 교과서를 발행하기 시작하였다. 이어 통감부 당국은 1908년 8월 학부령으로 '교과용도서에 관한 규정'을 공포하여 교과서 행정에 관한 모든 사무를 장악하고 민간 발행의 교과서를 통제하였다. 일제의 교과서 통제는 1909년 2월 공포한 출판법에 의해 더욱 강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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